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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류의 미래와 우리의 소명
 

인류의 미래와 우리의 소명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한 사람이 그 생애동안 하나님의 부르심과 목적이 있다면 한 나라 역시 지정학적ㆍ역사적 소임이 있다고 믿는다. 그 소명이 국가적으로 동의되고 국민적으로 합의될 때 ‘시대정신’이 형성되어 한 나라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 것이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미래정신’을 형성하는 예언자적 삶을 구현하게 될 것이다.



1. 현재의 위기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시대정신이 무엇이며 또한 우리는 미래정신을 키워가고 있는가? 박정희 시대에는 그나마 ‘잘 살아보세’ 라는 시대정신이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민족독립’이라는 시대적 소명이 있었다. 이제 먹고 살만한 이 시대는 계속해서 20,000$, 30,000$로 나아가는 경제적 부요만이 우리의 가치와 목적이 되어야 하는가? 선진국이 되어야, 세계 몇 위권에 진입해야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는 참으로 빈약하며 설득력이 없다.

  우리는 얼마나 절실한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는가? 60년 이상의 남북한의 분단 상황의 평화적 해결, 보수 ․ 진보라는 이름의 국론분열과 금융ㆍ경제의 난국과 실업문제, 교육 문제 등 수많은 과제가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바른 가치관에 입각한 정책적 노력과 국민적 합의가 미진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세계 11위의 국력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국가적 위상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2. 선진국(先進國)에서 선진국(善進國)으로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developed country란 우선적으로 경제력과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 사회적 발전을 이룩한 나라를 말하는데 소위 유럽과 미국 등을 중심으로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를 들 수 있다.



  ‘선진국(先進國)’이란 말 그대로 앞선 나라이고, 앞서기 위해서 불가피한 경쟁과 배제의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진국은 필연적으로 후진국을 양상할 수밖에 없고 이로 말미암은 경제격차, 빈곤의 양극화, 폭력과 긴장의 증대는 불가피하다. 그간 근대화 이후 세계는 인류 역사상 엄청난 규모의 자원낭비와 전쟁으로 무지와 비극의 일상화를 경험해 왔다.

  이제 우리는 선진국(先進國)이라는 경쟁적이고 물질 소모적이며 폭력적 상황을 극대화된 오래된 모델(Old Model)이 아니라 선진국(善進國)이라는 비경쟁적이고 정신적 가치를 고양하며 평화와 보편선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국가모델(New Model)을 실현해야 될 때이다.

  선진국(善進國)은 비경쟁적이고 국가의 독특성을 살리는 나라라고 볼 수 있다. 경제ㆍ정치ㆍ군사력에서 우위에 서려고 경쟁하면 할수록 폭력도는 증가되고 지역 안보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가 가진 고유한 자원ㆍ인력ㆍ역사ㆍ문화를 활용한 국가 발전을 이룰 수 있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평화로 가는 길을 여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선진국(善進國)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과 내면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인간 중심의 사회를 목표로 한다. 애국이란 이름으로 국가정책의 희생자가 되거나 국익이란 미명으로 인류의 공통선을 해치는 일은 없게 하자는 것이다.

  선진국(善進國)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하나님 나라의 세속적 증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 형성은 교회를 통해서 전개되는 운동이지만 또한 그 사회영성(social spirituality)의 영향력으로써 한 국가 역시 정의와 평화의 가치가 정착되도록 할 수 있다. 영성적 가치가 사회적 가치로 환원되어 인류의 공공선과 보편선을 증진하고 억울한 사람, 가난한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세상이 될 것이다.



3. 성서적 선진국(善進國)



  기독교는 잃어버린 시대가치를 제시하기 위해 먼저 예수의 가르침과 성서의 가르침을 현실에 적용ㆍ해석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미래 가치를 보게 만들고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개인 구원과 교회 성장의 도구가 아니라 역사ㆍ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실제화 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질서가 세상 속에 약동케 하는 근원이다. 그 과정은 공동체적 사회형성을 통해 진행된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

 

 

 

 

 

 


 

 

 

 

 

 

제사장 나라

 

 

 

 

 

 

 


 

 

 

 

 

 

 

 

 

 

 

 

 

 

 

 

 

 

자비

 

정의

 

창조질서

 

영성

 

시대정신

ㆍ새로운 커뮤니케이션

ㆍ자급적, 상호부조적 경제

 

ㆍ새로운 의사결정 통치제제

ㆍ협치(協治, goverance)

ㆍ영성적 정치

 

ㆍ만물회복

ㆍ생물종류 

다양성 유지

ㆍ문화다양성 유지

ㆍ적정기술

 

ㆍ중보의 영

ㆍ공동체 형성

 

ㆍ영성과 사회정의 통합

ㆍ문제해결 지향

ㆍ대안제시

 

 

 

 

 

 

 

 

 

 

 

 

 

 

 

 

 

 

 

 


 

 

 

 

 

 

 

 

 

 

공동체 사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이 창조된 근본이자 그 실체이다.

  말씀(Word)이야말로 하나님과 이 세상을 연결하는 모태이자 운영방식이다. 우리는 말씀체험(단지 말씀 읽기, 이해가 아니라)을 통해 하나님과 세상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진리체제(Truth System)에 진입할 수 있다.

  말씀은 창조로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진화되는 진리(evolutionalizing Truth)’이다. 이것은 진리 자체가 변모한다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더 풍성하게 해석되어지며 진리가 더 온전한 체계로 세상에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창세기 1:1의 세계 ‘창조’와  시편 51:10의 마음의 ‘창조’는 같은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세계창조는 일회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회개를 통한 마음의 혁신으로 말미암아 일상적으로 새로운 창조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

  그러나 인간은 그 창조를 지켜나갈 만큼 겸손치 않았고, 회개를 통해 창조를 성화시켜 갈 만큼 영적이지 못했다. 때때로 예언자와 안내자가 필요했지만 제한적이었고 미약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을 통감하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심으로써 인간의 연약과 죄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의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으로 오셔서 불완전하고 연약한 우리자신과 세상 전체를 화해케 하시고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고 실천하는 새로운 인류를 생산하신 것이다.

  예수는 주(Lord)와 구세주(Saviour)로 오셨지만 그 기반은 긍휼히 여기시고 대신 짐을 져 주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신 것이다. 예수를 왕으로 혹은 선지자로 드러내는 것은 필요하지만 과도하게 강조될 때 기독교는 권력과 폭력의 수단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더 적용할 예수의 사역이 바로 제사장직(Priesthood)이다.

  앞으로 기독교의 소명은 이 예수의 제사장직에 대한 실현여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수님의 전 생애를 극적으로 묘사한 성서는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해 기도하였느니라.(이사야 53:12)’고 정리하고 있다. 여기서 기도는 평범한 기도가 아니라 중보기도(Intercession)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정체(正體)는 중보자, 대제사장으로 드러나야 정확하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도 예수를 대제사장(High Priest)으로 묘사하면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여 은혜에 나아갈 길을 여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사실 인류역사의 모순과 연약과 한계의 극복은 냉정한 진리체계와 논리, 물질에 기반을 둔 과학-기술, 탁월한 통치기술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가 하나 되어 체휼(존재의 뿌리가 교감되고 헌신되어 죽기까지 자신을 버리는)되는 과정이 없이는 역사의 깊은 어둠과 죄는 결코 극복될 수 없을 것이다.



제사장의 나라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기대하신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나 그 나라가 이 땅에서 실현되어가는 과정은 ‘중보의 영’(Spirit of Intercession)으로 말미암은 제사장 나라의 확대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사도바울의 선교(전도)의 전 과정은 기실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이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로마서 15:16)’고 고백하고 있다. 군림하고 폭력적인 경향을 띤 어떤 외적 영향력을 배제한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섬김과 자기희생 그리고 그 근본이 예수의 영과 잇닿아 있는 중보자의 삶이 아니고서는 복음 전도와 사회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예수를 통해 참 인간을 보여주시길 원했다면, 이스라엘을 통해 오고 오는 역사 속의 나라들과 공동체들의 참모습을 보여주길 원하셨다면 그것 역시 제사장의 공동체, 제사장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6)’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베드로전서 2:9)’

  제사장의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직접 반영하며 사회변화의 목적과 과정에 그의 성품이 작동원리로서 적용된다. 제사장의 공동체(제사장의 나라)는 기본적으로 자비와 정의, 창조질서의 회복과 영성 그리고 시대정신을 보여준다.



1) 자비

  자비는 긍휼히 여김이고 예수 그리스도 중보의 영의 핵심이다. 자비는 죄를 묻지 않고 죄를 지고자 함이다. 자비의 사회화는 궁극적으로 사회전반에 인간의 정서가 살아나고 참인간의 가치를 구현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원리이자 실천이다. 자비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만들며 상호부조의 사회로 나아가며 새로운 경제를 창안한다. 이 새로운 경제는 단지 가난을 구제하는 시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자급적이며 상호부조적인 경제(Self-sufficiency & communial economy)를 만들게 된다.



2) 정의

  정의는 새로운 의사결정과 통치체계를 만든다. 권력집중과 독점화에서 섬기는 권력,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를 만들게 된다. 그것은 협치(協治, governance)를 가능케 하고, 토지권이나 물권 등 모든 소유에 대한 정당한 자리를 찾게 만든다.

  성경의 정의는 섬기는 통치이다. 그것은 실제로 간디를 통해 시도된  ‘영성적 정치’를 현실화시키는 성서적 도전이며 평화와 인권을 회복하는 법적구조를 가능케 한다.

  정의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되찾고자 하는 전 영역에서의 투쟁이다.



3) 창조질서의 회복

  제사장의 영은 만물의 회복(로마서8:19-23)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으로 다가간다. 죄와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창조질서의 훼손을 되돌려 놓는 열정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크게 무생물계를 포함한 생물종 다양성(bio-diversity)과 소수종족과 언어를 지켜나가는 문화 다양성(cultural-diversity)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또한 창조질서에 있어서 중보의 영은 자원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현재의 과학기술의 탐구에서 지속가능하고 민중적 과학을 가능케 하는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의 지역적 발전을 모색한다.

  창조질서의 회복은 또한 과도한 도시문명에서 벗어나 인간 생태에 어울리는 자연과 농촌에서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새로운 형태의 귀농과 생활양식을 창안하게 될 것이다.

  이 창조질서의 회복 과정은 인류사회의 회복이라는 거대 담론을 현실화하여 아세아ㆍ아프리카에서의 마을단위의 공동체운동을 활성화하고 국제적 차원의 창의적 협력과정이 진행될 것이다.



4) 영성

  중보의 영은 그 근원에 있어서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영성이다. 그것은 ‘거룩’이라는 개인과 사회의 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제사장나라는 거룩한 백성(출애굽기19 ;6)을 기반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전형적인 회심과 대중운동(People movement)이 일어나지만, 독특한 형태의 사회영성이 진행된다. 실제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농업, 교육 부문에서 이원론적 분리가 치유되고 전인적인 인간 성장과 사회 통합적인 가치가 발흥된다.

  이 영성은 말세의 주적인 바벨론의 물량적이고 제국적 세력에 맞서서 거룩한 질적 생명력을 가진 공동체가 세워지게 한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4:8, 17:5,18:10, 19:21의 ‘큰 성 바벨론’과 21:2,10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5) 시대정신 제시

  제사장의 영은 세상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마음이기에 언론과 정책으로 읽어내지 못하는 세상의 깊은 아픔과 세계 문제를 통찰할 수 있는 예언적 기능을 하게 한다. 제사장적 직무는 결국 세계 문제를 단지 정치적 시각, 경제적 시각, 교육적 시각의 이익 집단적 시각이 아니라 인간본위의 시각, ‘세상이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방식대로의 시스템을 읽어내게 된다. 그것은 시대정신으로 우리의 역사를 끌고 가게 되는 역동성과 방향성을 제시한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당위적 소명은 자칫 기독교로 하여금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폭력적 선교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제사장적 접근은 심지어 타종교까지도 포용하되 진리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생명력을 평화롭게 구사한다.

  분명한 시대정신의 확보는 제사장적 기도와 더불어 사회과학적 인식을 인정하는 여유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 사회와 하나님의 나라

  마침내 중보자의 삶으로 말미암은 사회적 변화는 일차적으로 공동체를 형성케 하고 그 공동체는 예수 재림 때까지 이어지면서 하나님 나라의 표징으로 이 땅 가운데 빛날 것이다. 그간의 역사속의 공동체 운동은 다양한 시대적 요청, 혹은 자발적 동기로 생겨났다. 영성적 공동체, 경제 및 정치 공동체, 대안적 문화공동체, 생태공동체 등…. 그러나 이 때 제사장적 영성을 향한 합의된 노력이 앞에서 말한 자비와 정의, 창조질서의 회복을 통합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출현시키며, 이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영성적이며 시대의 변화를 이끌만한 철학이 내재하는 공동체가 된다.



  이러한 공동체는 종말적 상황을 맞아 ‘바벨론성’으로 총칭되어지는 이 세상의 제국주의적 시스템,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사회구조, 인간의 도덕성과 가치를 말살시키는 시스템과 싸우는 궁극적인 전투공동체의 성향을 가지되 그 방식은 창의적이고도 비폭력적이되 인류의 다수가 공감하는 보편적 방식을 가질 가능성이 많다.



   하나님과 맘몬(마태복음6:24)의 역사적 선택은 그 사회적 표현방식이 ‘의의 공동체’와 ‘불의의 공동체’ (시편14:5)형태로 극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 운영방식이 하나님께 소망을 둔 신앙공동체는 생활양식의 고백으로서의 자발적인 가난(Voluntary Poverty)과 공생공사(共生共事, 서로 돕고 서로 섬기며 사는 공동체)의 사회를 형성케 하며, 맘몬을 추구하는 바벨론적 공동체는 부와 권력의 집중화와 이로 말미암은 폭력과 전쟁의 심화, 또한 빈부격차와 인간가치의 소진 현상으로 공생공멸(共生共滅)의 현상이 사회 곳곳에 드러날 것이다.

  이제 진리 공동체에서 실험되고 생활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현상인 의와 평강과 희락(로마서14:17)의 선물을 누리게 될 것이다.



4. 우리의 소명



  선진국(善進國)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원과 물적 소유에 기반을 둔 경제력에서 인간자원과 인간의 내적 가치가 사회화 되도록 격려하는 사회로 변화되는 과정이며, 그것은 신앙적으로 ‘성화’의 과정을 경험하며 사회적으로 평화를 경험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것은 ‘섬기고 대신 죽어주는’ 제사장적 생활양식을 보편화시키므로 인류역사상 희귀하며 독특한 영성적 과정을 보여 줄 것이다.

 

1) 개인적 차원

  인류 역사 흐름을 의로운 세대로 이어가기 위해 중보자의 출현은 시대가 필요로 하며, 인류의 역사흐름이 멸절(extinct)이 아니라 남은 자의 승리라면 중보자의 공동체는 필연적이다. 개인은 아브라함이 소돔성 심판에서 보여주듯. 모세와 여러 선지자의 삶과 예수의 생애에서 보여준 중보자의 삶을 생활 영역에서 적용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죄와 악이 인류사회의 생명력을 잠식한 실체라면(live의 역순이 evil이라는 통찰은 뛰어나다), 그리고 인간 관계 속에서 죄와 악을 다루는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 시스템이 개발되어 왔다면, 이제 중보자를 통해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죄와 악을 다루어가며 사회적 비용을 경감하는 새로운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중보자로서의 개인은 개인의 죄, 악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세계적 문제를 짊어지는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이전 역사의 중보는 개인과 선택된 소수의 예언자적 사역이라면 향후의 중보사역은 공동체적이고 사회적 영성의 형태로 중보가 전개되리라 본다.

  교육적으로는 ‘말하면 섬기는 교육’, ‘섬기는 학문운동’이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중보적 성격의 과학, 기술, 학문적 노력이 발전될 것이다.

  대안 에너지, 대안 기술 영역뿐만 아니라 공동체성에 기반을 둔 농업과 사회적 기업 또한 현재 EU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통합도 주목할 만한 모델이 될 것이다. 이제 학교에서도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인재를 길러야 될 것이다. 중보적 인재는 영성 뿐 아니라 사회적 감수성도 뛰어나며 실생활에서 섬김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될 것이다. 이러한 인재는 공동체에 기반을 둔 삶속에서 잉태될 여지가 많다.

  그런 면에서 엘리트 학생만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과 성향의 학생들이 공동체로 학습하며 생활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학생을 가르치고 학생을 지도하는 방식 또한 변화되어야 할 것이며 학문의 목적과 방향 또한 담겨져야 할 것이다. 향후의 선진국은 얼마나 제사장적 인재를 갖추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우리나라의 소명



  얼마 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케냐의회 연설에서 아프리카 발전모델로서 한국을 언급했는데 그 이유로 대국민 교육의 강화, 사회적 분야에 걸친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민주주의로 꼽았다. 교육, 투명성,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의 내적 자질인데, 그것이 우리나라의 발전기반이 되었다는 분석은 타당하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아세아와 아프리카의 국가발전의 모델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인류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적극적인 비전을 세워나가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사회의 발전은 박정희식 개발이 유효했다고 평가한다. 사실 박정희 시대의 중공업 중심의 산업화, 수출위주의 경제는 전후 다른 나라와 비교가 어려운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고 ‘잘 살아보세’라는 시대정신은 빈곤과 기아를 극복했다. 여기에 교회의 ‘믿으면 된다’, ‘하면 된다’는 신앙이 활력을 부여한 것은 당연하다. 기독교의 당시의 영성이 시대정신을 구현하는데 기여한 것이다. 그러나 개발독재로 인한 지역불균형과 도농 간의 이원화, 인권의 후퇴와 민주주의의 지난한 성취과정 등을 야기했고 지금까지 지역감정, 남북문제, 빈부격차, 국민의 정신적 가치저하라는 고통이 극복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박정희식의 개발 독재를 아세안 아프리카의 모델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정치의식이 성장하고 민의(民意)가 보편화 되는 세계에서 개발독재는 기존의 권위주의적 정치구조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박정희식 개발 모델을 재해석하고 극복하여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내놓을 시대적 사명이 있다고 본다.



  첫째로, 개발독재가 아니라 협치(協治)에 의한 개발(development of governance) 이 되어야 하며 가능하면 외자도입과 수출 주도의 경제보다 내수 경제 활성화와 내생적 자원 개발 (Endogenous Resource Development)을 통한 국가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이를 위한 소수 권력자에 의한 의사결정이 아니라 국민대중의 희망과 자원을 동원하고 활력화할 수 있는 지역적 정치체제가 시도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의 정부 및 비정부기구(NGO), 비영리기구(NPO)등 다양한 시민운동의 경험이 나누어 질 수 있다.



  셋째, 일차산업에서 이차산업, 이차산업에서 삼차산업으로 진행해야 발전국가가 된다는 고전적 국가모델이 아니라 농축어업 및 산림을 기반으로 하되 생산, 가공, 유통, IT등이 유연하게 접목된 농산업사회(Agri-industary society)를 기반으로 해야 할 것이다. 식량자급과 세계 경제와 금융위기에 견딜 수 있는 국가적 근력을 갖추는 것이 아세아, 아프리카의 기본 과제라고 본다.



  넷째.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지금의 국가 발전의 저력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아세아 아프리카 제국의 발전에 있어서의 교육투자와 교육개혁도 긴급한 과제이다. 그러나 서구 중심의 하이테크놀러지와 지식의 점적전파(trickle down)가 아니라 종족별ㆍ지역별 전통지식의 발굴과 국민의 복지와 희망의 기대(expected hope)를 잠식하지 않는 규모의 적정교육이 필요하리라 본다. 특히 교육비로 인한 빈곤 초래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사회적ㆍ정치적 합의가 필요하고, 국민과 국가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고유한 역사와 가치를 교육적으로 풀어내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과 동북아 평화 유지의 노력이 향후 세계의 분쟁지역과 아세아 아프리카의 갈등 지역에 교훈이 될 수 있다. 남북한의 단절은 일차적으로 남북한 양자의 문제이지만 나아가서 세계문제의 고리가 얽혀 있는 부분이다. 냉전의 끝자락에 달려있는 이념의 갈등 장소이며 인류의 평화 역량의 시험대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인류의 조정자 역할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본다. 남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을 위시한 미국등 강대국의 각축장이므로 한반도의 정치 외교적 역량에 따라 세계 평화의 판도가 크게 영향 받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한반도는 정치 경제적인 강대국을 꿈꾸는 비현실적인 정책보다 주변국의 패권주의화와 이념 및 욕망의 충돌을 조절하는 평화성립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정치 영역에서의 중보자적 소명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본다. 한반도는 또한 영성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감당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유교, 불교, 샤머니즘의 전통종교가 이어져 내려왔고 근대에 와서는 기독교가 합세하여 종교 다원주의의 문화가 이미 익숙한 사회이며 이러한 문화 종교적 탁월성은 종교 갈등을 겪는 많은 지역의 조정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여섯째,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류사에 흘려보내는 선교적 사명이 있다고 본다. 부흥(revival)의 경험이 있었고 교회 갱신에 대한 끊임없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의 신앙적 보수주의, 정치적 의존성, 개교회주의, 교권주의 그리고 신학적 미성숙 등이 풀어야 할 과제이긴 하나, 전인적인 복음을 사회 영성적 적용을 통한 통합선교 그리고 아세아 아프리카지역의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지역 사회개발선교(community development mission)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이에 걸맞는 말씀 사역을 확대한다면 인류사에 독특한 기여를 감당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인류사에 있어 독특한 사명이 있고 이 일을 위해 교육적 과제가 공동체적으로 교감되고 인재들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반만년 가까운 역사 가운데 고난을 통해 정화되고 성장해온 국가발전의 지혜와 경험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소임으로 전환되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아세아, 아프리카의 모델국가로서의 요청에 부응하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세지략(經世之略)의 지혜를 인류가운데 흘려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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