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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민들레학교와 미래
 

민들레학교와 미래



  모든 학교는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기관이며 모든 교육은 학생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좋든 나쁘든 오늘이라는 현실의 삶은 이전 시대 학교와 교육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학교라는 제도를 통한 보편교육의 역사는 사실 길지 않다. 인종차별, 남녀차별, 신분과 경제적 차별로 인해 서양의 경우는 200년 내외,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적 교육 역사 역시 오래지 않았다.

  학교와 교육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본다. 과연 그간의 우리의 교육은 이전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했으며 우리의 삶을 더 의미 있게 했는가? 비록 과학과 경제의 발전으로 인한 물질과 소유의 폭은 넓혀졌지만 가난과 갈등, 폭력과 죽음의 문화는 그 어느 시대보다 쉽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지 않는가? 과연 미래를 준비해왔다는 교육과 그것을 수행해온 학교와 교육기관은 그 소임을 다해왔을까?



1. 꿈의 과잉 시대

  아이들은 자라면서 이런저런 꿈을 가지고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될 거라고 미래를 그려본다. 그리고 책과 어른들과 사회는 열심히 공부하면 오바마 대통령처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처럼 될 수 있을 거라고, 열심히 노력하면 김연아처럼 될 것이라고 한껏 격려한다. 교회에서는 요셉처럼 꿈을 꾸라고 설교하고 청년들에게 비전을 가지라고 촉구한다.



  꿈과 비전과 미래가 과연 우리가 간절히 원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인가? 물론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기회란 것이 과연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인지 많은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실 대다수의 인류, 특히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꿈과 미래를 가질 수 있는가? 그들은 하루하루를 생존해 나가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필요를 채워가기도 급급한데 과연 고상한 꿈과 미래를 가질 수 있는가?



  성경은 예상 밖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꿈과 미래에 대해 만족할 만한 말을 하지 않았다. 요셉은 한 번도 자기가 애굽의 총리가 될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고지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지 않았다. 성령께서 비전을 주면 받는 것이지 비전을 가지라고 촉구하지 않는다.



  개인의 욕망을 성취하고 야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충실하고 정의와 자비의 실천을 축으로 하는 하나님나라의 보편적 가치를 인내하며 감당하라는 희망 이외에 또 무슨 꿈이 있는가?

우리는 꿈의 과잉시대, 그로 말미암는 욕망의 충돌시대를 이미 경험하고 있다.



2. 미래란 무엇인가?

  우리가 그래도 미래에 기대를 거는 이유가 무엇인가? 상처가 치유되고 불완전한 삶이 온전해지고, 가난이 해결되고 불안이 평화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 아닌가? 사실 미래가 ‘더 나은 오늘’이라면 오늘이 과거의 최선의 상태인가? 역사는 누적적으로 발전하고 진보하고 있는가?



  지구적 차원의 위기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위협에 직면해서 어떤 과학자와 기관들은 이러한 지구적 위협을 돌이킬 수 있는 세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인간의 과학과 문명, 우리의 기도와 종교적인 열정이 소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이룩해 놓은 결과가 겨우 지구적 재앙을 앞둔 결과를 부인할 수 없다면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꿈이라는 것, 우리의 미래라는 것을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과거의 미래였던 오늘의 이 어두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반성 없이 또 다시 꿈만 꾸라고 하고, 후세대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려 놓을 수 있는가? 우리가 만들려는 미래가 무엇인가? 그 미래에서 개인이 추구하는 꿈이 무엇인가?



3. 미래와 공동체 가치

  도재원 선생님(거창고등학교 이사장)께서는 성공에 대한 정의를 내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공은 자신의 삶을 어디에 바치느냐에 달려 있다. 성공은 정의,

   자유, 평등, 사랑을 구현하는 데에 삶을 바친 사람들의 생애에

   대해서 주어지는 칭호이다. 아무리 유명해지고 한 분야의 대가가

   되고, 사업에 성공하고 자기가 어릴 때부터 바라던 소망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정의와 사랑’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그 생애는 결코 성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정의와 자유와 평등과 사랑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근본 가치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보편적 가치에 헌신하고 그러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가 훼손되고, 자유가 억압되면서 누리는 국민소득 30,000불이 과연 어떤 의미인가? 사람이 편히 살아가는 세상, 자연과 생태계까지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 이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차적인 소명 아닌가? 미래 가치는 공동체 가치와 통합되어야 할 것이다. 미래가 개인의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욕망의 경기장이라면 아이들은 자라고 싶지 않을 것이다.



4. 재앙의 때를 준비

  우리는 더 이상 헛된 희망을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부만 하면 꿈이 이루어지고 열심히 하면 미래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 환상을 주면 안 될 것이다. 역사가 진행되는 방향을 살펴봐야 할 것이며 인류의 과제가 무엇인가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은 이 역사 속에 책임 있는 자로서 기도하고 연구하고 실천하는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고통스럽게 공감하듯 인간과의 불화, 자연과의 불화, 심지어 신과 진리와의 불화의 시대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함으로서 이 세상은 이미 고통 하는 말세의 현상이 깊어졌고(디모데후서 3:1-2) 자연은 수많은 자연 재해, 특히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한 지구적 차원의 재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종교 간의 갈등과 분쟁은 쉽게 화해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재앙의 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위험사회의 도래 앞에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되며, 우리는 어떤 사람을 길러내야 되는가?



  첫째, 소비적 생활양식을 버리고 생산적인 생활양식으로 삶이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농민과 노동자의 수고를 귀히 여기고 생각 있는 농민, 철학하는 노동자를 길러내야 할 것이다. 민들레학교의 성공은 우리 졸업생 중에 그러한 농민과 손으로 일하는 노동자를 얼마나 길러냈는가 여부에 달려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부자 되기보다(야고보 사도는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야고보서 5:3)’라고 책망한다)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하는 인재들이 배출되었으면 한다. 가난의 신비를 체험하고 가난이 갖는 참된 풍요의 삶을 가난한 자들에게 열어 놓는 인재가 되었으면 한다.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신(고린도후서 8:9)’ 예수님의 삶을 깊이 되새겨 볼 일이다.



  셋째, 자기와 가족만 생각하는 가족·혈연 이기주의에서 인류 전체를 섬기려는 결단을 일상화하는 인재가 나왔으면 한다. 그가 가진 지식과 경험과 능력을 다 투자해서 이웃·인류의 곤경을 우선적으로 돕는 인재가 되었으면 한다.



  넷째, 권력과 부의 네트워크가 아닌 긍휼과 정의의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활동가가 나왔으면 한다. 인맥, 학연, 지연을 통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부와 권력을 안정적으로 추구하고 확대해 나갈 때 민들레 출신들은 오히려 보호막이 없고 안정 장치가 마련되지 못한 사람들을 대변하고 이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



  다섯째, 부와 권력의 집중으로 말미암은 필연적인 제국화에 맞서서 마을 만들기, 공동체 만들기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효율과 규모, 소위 표준화라는 미명으로 생산과 돈은 그 규모가 커가지만 빈곤과 비인간화 되어가는 세상의 냉담한 그늘에서 돈의 세력을 최소화하고 창의적 자원 활용과 가족적 유대관계로 건향(建鄕: 마을과 공동체 세우기)하는 일군들이 나왔으면 한다. 이를 위해 가능한 한 도시에서 농촌으로의 삶을 택했으면 한다.



  여섯째, 지식 중심에서 지혜중심의 삶을 살았으면 한다. 쓸모 있는 공부,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 신념, 용기와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상·대안적 세상을 작게나마 만들어가는 개척자들이 되었으면 한다.



  일곱째, 삶을 추구하기보다 죽음을 추구하는 영성가들이기를 바란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자 살려고 더 잘 살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나 우리는 죽기를 준비하고 소명에 따라 죽을 준비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삶, 이익을 위한 구차한 삶이 아니라 한 알의 밀알이 죽어 많은 열매를 맺듯 우리도 진리와 함께 살고 진리와 함께 죽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빌립보서 1:23, 3:10-11).



  이 일곱 가지는 향후 재앙의 시대를 맞이해서 감당해야 할 우리의 내적 준비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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