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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사람들_민들레공동체 김인수 선생



“민들레는 있는 둥 마는 둥, 때로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지만, 계절의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표현하는 이 나라 백성의 정서에 깊이 사랑받는 꽃입니다. 이처럼 민들레공동체도 사치와 향락,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적 경향에 대항하여,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의식주가 인간의 가치관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형성된 신학’을 신뢰하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셨던 생활양식을 좇고자 합니다.”

김인수 선생이 말하는 민들레의 삶은 온통 성공과 물질을 향해 질주하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삶과 신앙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는 1995년 5월, 민들레 따뜻하게 피는 계절에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마을로 들어왔다. 산골인 ‘서부 경남’ 지역의 한 자락이다.

이미 1991년부터 몇몇 형제들과 더불어 공동체적인 삶을 실험했다. 수박 재배와 지렁이 사육, 퇴비차를 운영하였다. 무교회 지역에 교회 개척도 계속하였다. 낡은 시골집을 수리해 살면서, 묵은 논밭을 빌려 농사를 짓고, 그렇게 생산한 농작물을 내다 팔았다. 그렇게 몇 해를 살면서 그들은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그들만의 세계’를 세웠다.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행복이란 그런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일이었다. 두려움과 경쟁과 슬픔과 좌절로 얼룩진 이 세상의 한복판에 어느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그들의 세계를 만드는 삶,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태어나 가장 먼저 닦아야 할 삶의 터전이란 사실도 배웠다.

곧 김 선생이 말하는 대안적 삶의 형태가 공동체인 셈이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가공할 만한 인권유린과 전쟁, 온갖 환경파괴 행위, 그리고 가시적인 폭력에 대해 그저 분노만 품고 있을 뿐 삶으로 맞서지 못하는 까닭을 느슨한 공동체성 때문으로 설명한다. 모두 외로운 개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민들레공동체가 공동체의 힘을 방출한 것이 선교 현장이었다. 선교공동체인 셈이었다. 그는 통합적인 선교를 말하였다.

“하나의 몸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걸 생각해 보십시오. 선교 역시 한 개인은 물론 그 개인들이 발 딛고 선 사회를 변혁시키는 일입니다. 민들레공동체의 선교는 일종의 프로젝트입니다. 가령 미얀마 단기선교는 ‘오아시스 프로젝트’였지요. 우물이 없는 지역에 우물을 파면서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선교입니다. 튀니지아에선 농촌에서 교육사업을 벌입니다. 캄보디아에서도 학교에 다니지 못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대안학교를 열었어요. ‘꿈과 미래 학교’인데 여기선 마을의 이장을 세우는 프로그램을 통해 풀뿌리 운동을 일으키고 있어요. 또 ‘캄보디아의 이웃’(Neighbour of Cambodia)이라는 NGO 단체도 등록했습니다. 이런 기구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사회운동을 펼칩니다. 인도 나가랜드(Nagaland) 랭마 부족 선교는 인도 정부로부터 심한 정치적 탄압 속에 있는 이 지역 주민들에게 학교와 시범농장을 세워 자립을 위한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어내고, 네팔 등지로 가서 복음을 전할 선교사까지 양성해 냅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60% 이상이 절대빈곤층들인 그들의 형제들에게 사회?경제발전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민들레공동체의 김 선생을 보며 뿌리를 깊이 내리는 민들레를 생각했다. 그들의 선교는 민들레처럼 그들이 존재하는 농촌에서 양분을 흡수하여 나무의 높이와 부피를 키운다. 따라서 그들이 해외에 나가서도 유독 오지와 농촌을 찾아 다니는 까닭은 그들이 씨 뿌리고 사는 땅이 ‘서부 경남’인 까닭이다. “1986년 한 농촌마을에 전도하러 갔다가 학교 선생님께 쫓겨난 일이 있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쫓겨나는 우리에게 와서 ‘그러면 나루터에서 모이면 되잖아요’라고 말했는데, 그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저에게 농촌선교의 길을 걷게 만든 셈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원하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우리는 가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서부 경남의 무교회 지역을 다니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였습니다. 노천성경학교가 그때 시작되었지요. 비가 오면 학교 처마 밑에서, 햇빛이 강할 때는 나무그늘 아래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선교동지회를 결성하였고, 교회를 개척했으며, 나중에는 농촌의 본질적인 문제가 전도와 교회 개척에 있지 않고 농사 그 자체에 있음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생명농업을 일으키고, 다시 공동체의 삶으로 심화시켜나갔다. 결국은 삶이었다. 민들레가 가르치는 뿌리 깊은 삶이었다.

“농촌은 단지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인 의미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농촌은 거기서 더불어 살아가며 우리 삶을 일궈내고, 회복시키는 진정한 문화의 보금자리지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똥오줌이 하천으로 흘러들면 오염이 되지만 흙으로 들어가면 좋은 퇴비가 되어 땅과 작물을 키워냅니다. 그렇듯 오늘 도시에서의 모든 사회병리적인 현상들은 도시 자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품 같은 농촌에서 끌어안을 수 있지요. 농업 없이 진정한 문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동체에는 유난히 농대를 졸업한 형제들이 많았다. 그들은 지금 선교사가 되었거나, 농촌에서 농사 잘 짓는 이장이 되어 또 하나의 민들레를 키우고 있다. 지금 여섯 가정 서른 명이 함께 꾸려내는 민들레공동체는 그래서 희망을 피우는 또 하나의 민들레이다. 이 땅 어디서나 뿌리박고 꽃을 피우는, 그런 민들레의 세상을 품은 그들이 곧 희망인 셈이다. 그렇게 민들레가 피는 날, 세상조차 활짝 필 것을 믿어본다. 민들레공동체 홈페이지=www.dandelion.or.kr 박명철 기자



[박스_민들레공동체가 만든 민들레학교]



2007년에 개교…중등과정으로 성공적인 1년 보내 작년 민들레공동체는 또 하나의 실험을 시작했다.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를 개교한 것이다. 공동체는 결국 교육운동과 떼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자연스런 하나의 과정인 듯하다. 김인수 선생은 민들레학교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참 교육은 맘몬과 폭력과 욕망에 저항하는 대안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을 살며 이 땅의 가난한 자를 섬기는 인류애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간 우리 교육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민들레학교는 인격의 본체를 형성하는 자유와 공동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전인적인 교육을 펼쳐낼 것입니다.” 비인가 중등과정으로 출발한 민들레학교는 기숙학교이고, 현재 3학기제로 운영한다. 성경을 중심으로 한 경세철학과 영성교육을 실시하는 기독교 대안학교인 셈이다. 또 자율성과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개별 관심사 및 수준 별 맞춤식 학습으로 편성하였다. 학생들의 자치 활동은 물론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학생 스스로 학습에 대한 자유와 상상력으로 기획하고 실행하여 평가한다. 13명의 학생들과 5명의 상근교사, 6명의 강사들로 구성한 민들레학교는 2007년 첫 해를 보내면서 그들의 실험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 학교 공동체를 통해 아이들의 내면이 성장하였고, 생활훈련 통해 자기를 바라보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상처를 가진 친구들이 활짝 웃게 되었고, 몸과 마음이 커가는 모습이 뚜렷하였다. 거기에 학습의욕까지 생겼다. 무엇보다 학부모들의 연대가 활성화하면서 학교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민들레학교는 이런 성공적인 1년을 기반으로 2008학년도에는 두 학급에 모두 24명의 학생을 모집할 예정이다.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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